심리코칭연구소C&C/[용선생 이야기]

416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 한국상담학회 재난대응 정신건강, 위기상담 심포지움을 다녀와서...

이용희(용선생) 2015. 4. 12. 23:00

재난은 현대사회에서 피해갈 수 없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1979년 3월 28일 미국 역사상 최악의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미국 펜실베니아주 스리마일섬 핵 발전소 2호기의 원자로 노심이 녹아버린 것이다. 

이 사고로 주민 20만명이 대피해야 했다.

당시 미국의 전문가들은 원자로 사고는 백만년에 한번 사고가 날 정도로 매우 안전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불과 몇 년 후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엄청난 사고 였음에도 불구하고 미연방정부의 대처는 현재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이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역학조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실정에 비해 미연방정부는 찰스 페로라는 조직사회학자까지 위기대응팀에 결합시키는 등 매우 다각적인 노력을 시행했다.

당시 연구에 참여했던 조직사회학자 찰스 페로는 사고(accident)와 의사소통 과정의 연결성을 연구하였다.

그 결과, 사고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이유는 체계내의 상호작용의 복잡성으로 인해 사고는 불가피한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아무리 안전을 강조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고도로 복잡한 기술은 복잡한 의사소통 체계를 갖게 되면서

사고 발생의 가능성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찰스 페로는 의사소통 체계를 혁신하고 의사소통 강화를 강조하였으며, 이런 사고를 정상적 사고(normal accident) 혹은 체계적 사고(system accident)라 명명하였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연구했던 울리히 백(Ulich Beck)은 현대인의 삶을 “활화산 위의 문명, 위험사회”로 비유하였으며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인해 유럽의 지성들이 인류가 한순간에 멸망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하였다.

우리 국민도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 발생시 국가가 국민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국가가 해소줘야 할 안전의 욕구가 해소되지 못한 것이다. 

위험 사회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약자들이다. 전쟁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인 것처럼 말이다.

  울리히 백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위험 중 자연적 위험인위적 위험 중에서 더 위험한 것은 인위적 위험이며, 이 인위적 위험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과학기술이라고 했다. 또한 과학기술 뿐만 아니라 서구에서 복지국가의 약화에 따라 개인화가 진행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위험도 동시에 발생하여 현대사회는 더욱 취약해지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이에 따라 현대사회를 과학기술을 통한 위험과  분배 및 복지상의 사회적 위험이 동시에 생산되는 사회라 정의하였다.

기술에 대해서는 위험에 대한 의사결정을 지배하는 전문가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고 근대화의 과정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즉 문명과 기술을 활용하고 대처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통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3.11 동일본 대지진이후 일본 각계에서는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대지진 이후 대학에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언론과 매체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과학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등등의 문제를 사회 전반에 걸쳐 다각적인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논의 결과 나온 문제제기 하나!

“전문가들을 믿을 수 있는가?”

원자력 발전소가 안전하다고 주장했던 전문가들도 예상치 못한 사고는 있을 수 있다.

아마도 전문가들의 머리와 이론의 한도내에서만 안전했던 것이 아닐까한다.

이후 전문가들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하게 되면서 전문가들이 상정한 것 이외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피할 수 없는 재난이 발생하는 현대사회에서 재난은 비단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역, 집단, 국가적 문제이다. 

재난을 당한 개인이 아동청소년일 때는 더욱 더 그러하다

예컨대, 한 동네에서 여자 아이가 성폭력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그 아이 개인과 가정 문제를 넘어서 지역사회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서로를 불신하게 되고, 검증하려 드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흘러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의 아들 카이 에릭슨(Erikson, K.,1976)은 Everything in the path에서 개인의 회복은 집단의 회복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하였다.


“개인적 외상을 입은 사람이 적절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집단 외상으로 인해 지역 안에서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특히 재난에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절한 책임이나 도의적 실천을 외면할 때 

사회적 신뢰와 배신은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굴욕감과 평가 절하를 경험하게 하여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회복 불능 상태로 만들 수도 있다”


  개인 자체보다는 사회적 영향에 보다 깊이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재난이 발생한 지역에 광역정신건강센터 요원들이 투입되어 개인을 돕기 위한 개입을 시도하면 그들의 태도는 상당히 거부적이다.

정부 기관은 믿을 수 없다는 불신감이 초래한 결과이다. 자신의 힘든 점을 이야기하면 그 내용이 정부로 들어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사용될지 모른다는 불신감이다.

그러니 기관에 예산은 있으나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 지역에서 트라우마 사건이 발생하면 상당한 지역주민들이 타지역으로 이주하여 공동화현상이 발생하곤 한다.

안산의 경우도 비슷한 공포감이 발생하였다.

다행히 현재는 가족협의회를 중심으로 단단히 연대를 이루고 있어 이주현상은 없는 상황이다.


“개인의 회복 관점에서 지역사회 회복의 관점으로”


모든 트라우마는 집단트라우마이다

개인적 접근 이상으로 집단적, 지역적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개인의 상처는 연결된 이웃의 상처가 되고 지역의 아픔이 되기 때문이며 이 상처와 아픔에 대한 반응이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을 수 있다.

(안산 단원구에도 30만명이상이 거주한다. 즉 그 안에서 여러가지 다양한 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지역사회내에서 묘하게 크고 작은 분열과 갈등이 생겼다 없어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누가 아픈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회복할 수 있는 어떤 힘을 갖고 있느냐이다.

재난 이후 임상적 접근 이상으로 지역회복탄력성에 대한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재난 현장은 환자들의 장소가 아니라 연대와 공유, 나눔의 공동체가 되기도 한다.

아픔과 고통을 이겨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개인의 회복력 이외에도 더 중요한 많은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재난이 가져다준 아픔과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외부의 원조”뿐 아니라 함께 살아갈 “내부의 연대”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현재 시점에서 “상담과 심리치료”가 지금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담자들이 찾아가 “도와주겠다”라는 말과 태도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이유는 그들은 아픈 사람, 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녀가 하루 아침에 죽어 나가는데, 누가 잠이 제대로 올 것이며, 먹을 것이 넘어가고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그들의 그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으로 아픈 사람 취급, 환자 취급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차라리 “함께 해주겠다”라는 말과 태도, 실천이 그들에 더 유익하다.

도보행진에 함께하고, 분향소를 함께 지켜주는 것이 그들을 위로하는데 훨씬 더 유익한 일이다.

누군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내세우기 보다 지역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함께 할 때 상담을 받고자 하는 마음도 자연히 생길 것이다.

그들을 구호와 원조 대상으로 느끼게 하지 말고, 지지와 연대의 대상으로 봐줄 때 그들의 회복탄력성은 올라갈 것이다.



"구호가 아닌 연대, 자선이 아닌 연대"



[공동체가 함께 나누어야 할 가치에 대한 문제제기]

  • - 416 참사를 통해 알게된 우리가 상실하고 있는 회복해야 할 열가지 소중한 가치 -

1.우리는 정말 낮은 공감, 경제가 더 우선이라는 야만의 사회에 살고 있다. 더군다나 거짓 공감을 국민 모두가 학습했다.


2.우리는 정말 기본적인 양심을 잃고 있고,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양심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있다. 아이들이 묻는다. 책임이 높아질수록 양심을 따르지 않게 되는 거냐고


3.우리는 그래서 그런지 정말 무책임하다. 책임은 자리를 보전하는 것에만 뒤따른다.


4.우리는 진실하지 않아도 사는데 큰 불편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진실규명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얘기하며 보상이 더 중요한듯이 산다.


5.우리는 정말 직면을 피하고 있다. 그냥 여기서 적당히 눈감자고 한다. 눈을 감고 살자고 한다.


6.그래서 우리는 본질적인 애도를 하지 못하고 산다. 전 국민이 한을 못풀고 산다. 화병은 기본적으로 국민병이게 한다. 그냥 평생 제대로 애도하지 못하다 죽고만다.


7.연대가 무엇인지 모르게 하고 있다. 연대보다 중요한 것이 중파와 패거리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8.정말 약자가 무력함을 가르쳐주고 있다. 힘이 정의가 되는 것을 보게 하고 있다. 힘의 편에 서지 않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를 알게 한다.


9.여전히 안전은 사회가 지켜주지 않는 일임을 전한다. 서부 개척시대와 다를 바가 없다. 국가나 사회는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똑똑히 보고 있다.


10.우리는 자유롭기 어려운 사회로 회귀하고 있다. 우리는 자유를 포기하고 있다. 우리는 돈과 힘에 포위되어가고 있지만 잃는 것에 대한 감각도 없이 바쁘게 살아내고만 있을 뿐이다. 목숨만 부지하면, 다행이라는 안도와 동시에 돈과 힘의 공포 앞에 숨죽이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로 향하는 이유는 그들이 높은 보상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종북이어서도 아니다.

하부와 중간의 그 누구도 “우리는 결정을 못한다. 모르겠다. 위에서 하는 일이다”라고 무책임하게 나오니

그들은 당연 최고 권력자를 향할 수 밖에 없다. 

가장 끔찍한 것은 “돈”에 관한 이야기이다. “돈”만 주면 곧 잊을 것이라는 인식…

이것이 무서운 것이다.

이것이 아픈 것이다.


시민은 어떻게 참여하는가?

자연이 한 번 손을 대면 전 세계가 친구가 된다. 재난이 한 번 손을 대면 온 마을이 친구가 된다.

이 과정을 통해 경험한 낙원, 새로 결성된 공동체들, 새로 친구가 된 이야기들이 있다.

이미 일어난 시민들의 미담, 시민들의 반응, 시민들의 실천을 통해 친구가 되도록 수많은 다리를 놓아야 한다.

시민들의 이야기가 시민을 조직한다.

재난을 경험한 시민들은 피구호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즉 불쌍한 상태에서 머무르지 않고, 기능과 권한을 요구하도록 변화하게 되어 있다.

참여의 장에서 주체가 만들어지고, 주체일 때 권한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 본 내용은 2015년 한국아동,청소년상담학회 춘계학술대회 / 한국상담학회 재난대응 정신건강, 위기상담 심포지움의

재난과 지역사회 공동체 (강사 : 김현수 경기도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장) 내용을 작성자가 요약 발췌하여 기록한 것임을 밝힙니다 ]